현대의 인간은 사회적이고 계약적인 조직에 매여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위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매여 있는 이 속에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자유를 얻고 있다. 노동으로 받는 보수로써 인간은 자기 의지로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뛰어 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애티튜드를 가진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끊임없는”욕구 충족의 행위가 오늘 날 발전 된 문명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특히 동서양인의 시각이 다른 이유로 동양인과 서양인은 각기 다른 풍토에서 생존해 왔고, 다양한 방법으로 생존해 왔다.
주된 관점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답이 나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법을 시행 할 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거나 정상참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예외 없이 법을 적용한다고 한다.
똑 같은 그림을 보여 주고 감상을 물어 보면, 동양인은 주인공이 처한 배경을 중시하고, 서양인은 주인공의 현재 상태를 중시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활짝 웃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주인공이 행복할 것인가의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동서양인 모두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주인공 혼자만이 활짝 웃고 주변사람들이 슬픈 표정인 상황에서 주인공이 표정대로 기쁜 상태일까 묻는 질문에 대해서 동양인은 슬플 것이라고 답하고 서양인은 기쁜 상태라고 답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동양인은 주변 환경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일본과의 위안부합의에 문제는 있지만 개정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결정은 동서양의 관점 차이를 교묘하게 접목한 결론인 것으로 볼 수 있다. ①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인정 할 수 없다. ② 그러나 잘 못된 계약이라고 해서 그 계약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③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보상하겠다. ①은 동양인 관점으로 본 것이다. ②는 서양인 관점으로 본 것이고 ③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 나라 백성을 품는 정부의 관용이고 책임이다.
이런 결론에 대해서 일본은 내심 안도하면서 빚진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그간 우리나라와 맺은 계약의 이행여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는 명분을 갖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정부의 의젓한 명분과 배포에 대해 반면교사 할 것이다. 외교는 명분과 실리가 주요 관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적 평가가 더 중요 한 것이다.
마침 남북회담도 시작 되었다. 같은 회담을 보면서 미국의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위안부 문제 해법과 같은 정부의 해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의 한 차원 높은 설득외교가 기대 된다.
(사진 출처 : 9일 YTN 방송 캡쳐)
송근석 / shark@goodmonday.me
2차원의 문제는 3차원이상의 시각으로 봐야
해결점이 보이고, 3차원의 문제는 4차원이상의
시각으로 보아야 해결점이 보입니다.
결국 의식이 높은 사람이 세상의 문제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는것이죠. 주변국가들이 생각지도
못한 차원높은 해법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