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필로 쓴 유서 – “억울하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20일 새벽 3시경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40대 택배기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A씨는 사망 전 자필로 쓴 유서를 남겼다.
▲A씨는 유서에 “억울하다”고 호소하며 “택배기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 차량구입, 전용번호판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200만원도 벌지 못한다”고 썼다.
▲이어 “저 같은 경우는 적은 수수료에 한 달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구역”이라며 “이런 구역은 소장을 모집하면 안 되는데도 (대리점은) 직원을 줄이기 위해 소장을 모집해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팔았다”고 성토했다.
▲A씨는 대리점이 최소한의 복지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이동식 에어컨 중고로 150만원이면 사는 것을 사주지 않았다”며 “(오히려) 20여명의 소장들을 30분 일찍 나오게 했다”고 하소연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A씨는 퇴사를 희망했지만 대리점 측은 적반하장으로 A씨에게 손해배상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자신의 차량에 ‘구인광고’까지 붙이고 다니며 업무를 이어갔다.
◆ 영국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작년 말 영국에서 개봉된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 노동자가 수취인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메모지 문구다. 영화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 지위를 빼앗긴 채 불완전 고용과 저수입, 과잉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삶의 현실을 고발한다.
금융위기로 실직한 뒤 막노동 일을 전전하던 리키는 택배 기사로 일하는 친구를 보고 솔깃했다. 택배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자영업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아내 애비가 노인 돌봄 요양노동을 위해 출근용으로 쓰던 차를 팔아 택배용 밴을 장만한다. 열심히 일하면 금방 돈을 모아 2008년 금융위기로 실직해서 잃은 집도 되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서다.
그러나 리키가 예상했던 택배 수입은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해야 벌까말까 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할부금, 각종 범칙금, 배송 물건 도난이나 분실 배상 등 부대비용과 위험은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만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심각성은 사라진 퇴근, 빼앗긴 저녁시간, 잃어버린 휴일, 과도한 스트레스, 가족 간의 대화부재로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이다. 상상만 해도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 ‘총알배송’ 보다 ‘안전배송’이 우선되어야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코로나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단적인 사례일 것”이라며 적절한 지적을 하였다. 이어 “더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히 대책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 국내 택배 근로자들은 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택배기사들의 잇단 사망 소식으로 과로 문제, 대리점 갑질 문제들이 도마 위에 오르며 정부도 뒤늦은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과잉소비문화와 갑질의 동반이다. 코로나 언택트 시대에는 ‘총알배송’ 보다 ‘안전배송’이 우선되어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외부와의 연결고리인 택배기사가 건강하지 않다면 그를 매개로 병원균이 전파 될수도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는 유럽에서 수입된 냉동제품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도 있다.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택배기사의 건강한 삶이 ‘총알배송’보다 중요하다는 의식개혁과 ‘안전배송’을 위한 택배기사복지 개선이 시급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