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과 깨달음

겨울옷들이 이제는 옷장 위 자그마한 공간 속에 쌓여지고 있지만 내가 걷는 산길들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단지 한 겨울과 다른 것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높게 자란 소나무를 휘어 감고 자기가 주인인양 뻗은 줄기에 자란 잎들이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기생하는 줄기나무들과 공존하는 것들도 있지만 결국 고사되고 마는 나무들도 보인다.

길가에는 조금 지나면 또 흩어져버릴 하얀 매화의 모습이 염색하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의 나이 지긋한 여인네의 뒤태처럼 초연하다.

그런 세월들이 나와 함께 흘러간다. 인생엔 선불도 후불도 없듯이, 바로 지금의 현실을 떠난 신은 존재치 않은 듯싶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수라장이 바로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보리이다라는 유마경의 글귀에 화들짝 놀란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킨 막달라 마리아,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삶과 기생줄기 그리고 유마경의 글귀와 오버랩 된다.

그녀는 어쩌면 그 아수라장에서 성녀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깨달았으리라!

그렇게 각자의 마음은 텅 비어있는 자리에, 각자의 느낌으로부터 생긴 의식으로 만들어진 각자의 세계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마음은 요술쟁이일 수밖에 없다.

원래 텅 빈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미 만들어져 버린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국 번뇌가 있는 곳에서 깨달음이 있을 수밖에…

번뇌즉보리 煩惱即菩提

아직도 아수라장에서 허우적거리고 몸부림쳐보는 세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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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 살고, 세속의 의견을 좇아서 생활하는 것은 용이하다.

고독의 경지에 있어서 자기의 의견을 따라 생활하는 것도 극히 용이하다.

그러나 군중과 더불어 지내며, 유쾌하게 고독의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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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머리 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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