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화풍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으라면, 흔히들 ‘이발소 그림’이라고 말하는 상상화다. 현실에는 없지만, 이것저것 모은 아름다운 산수화나 바닷가 일출 속의 하얀 돛단배나 그런 것들이다. 이런 화풍은 동양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가 대표적이다.
♦ 낭만주의 상상화에서 탈피한 사실주의
유혈이 낭자한 혁명이나 전쟁 장면들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쟁을 소재로 그린 그림도 상상에 의한 면이 많았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한계에 대항하여 프랑스의 ‘귀스타브 쿠르베’같은 사람들은 주변의 실생활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처럼 사실 그대로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사진처럼 그린 그림들을 리얼리즘 화풍이라고 한다.
‘쿠르베’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초라한 모습과 중산층 부인네들의 뚱뚱하고 못생기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찬 저속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기존 사회질서를 비판하였으며, ‘이삭줍기’ , ‘만종’ 등으로 잘 알려진 ‘밀레’는 그림 속에서 육체노동의 찬양을 기리며, 화면에서 귀족들을 몰아내고, 농부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올렸으며, ‘도미에’는 ‘부르조아지’의 몰인정하고 우둔한 면을 부각시켜 ‘부르조아지’의 모순과 위선을 폭로 하였다.
♦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이야기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이야기는 이런 면을 부각한다. ‘만종’은 두 부부가 저녁나절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화면 전체에 저녁나절의 따뜻한 석양이 비춰지면서 감자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가운데 두고 기도하는 모습은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평화스럽고 풍요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러나 원작에는 가운데 바구니에 어린아이의 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밀레’는 어린아이의 시체로써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표현하고자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화상의 충고에 의해 어린아이의 시체는 감자로 바꿔지게 되었고, ‘수확에 대한 신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1855년에 ‘쿠르베’는 특설 개인전에서 ‘리얼리즘’이라고 써 붙였다. 서양화의 묘사는 동양과는 달리 원근법에 충실하여 철저한 사실을 기본으로 하는데, 여기에 ‘리얼리즘’라는 방점을 찍은 것이다.
♦ 천사를 본 적이 없어 그릴 수 없다
‘쿠르베’는 대상을 아름답게 미화하여 그리는 고전파나, 감정을 실은 정열이나 문학적 매력을 구하는 낭만파의 기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쿠르베’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말들 중 하나는 “천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아무런 감정개입 없이 현실 그대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형상에도 색채에도 가장 정확한 관찰을 하여 철저한 현실 재현뿐만 아니라 종래의 미술이 외면하던 사회의 가난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쿠르베’가 오늘날 재림한다면, 대형 벽걸이 민중화가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화가 ‘토머스 이킨스’가 그린 초상화는 주인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 고객들로부터 외면 받았다고 한다. 오늘 날 여권용 증명사진도 『뽀샵』을 하는데, 당대 사람들이야 오죽했을까.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그린 초상화의 10%정도는 고객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고 회자되는 ‘모나리자’처럼 예술가는 주문자에게 충실해야 값어치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낭만주의 시대부터 작가의 정체성을 추구하였지만, 시장은 아직 고객 중심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객들은 더욱 강해지는 작가들의 자의식과 작품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도권을 작가에게 빼앗기는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