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의 속삭임

오름을 오르는 중간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비에 흠뻑 젖었다. 바람과 함께 오는 비를 흠뻑 맞으며 오르는 오름길이 아주 먼 추억의 날을 떠오르게 한다.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좋아하는 빗소리는 지금도 여전하니 말이다.

그렇게 걷는 오름과 둘레길 주위의 산수국들도 벌써 잔치를 끝낼 모양이다. 벌이 왔다간 산수국들의 잎들이 하얀 모습으로 뒤집어져 있다. 다른 꽃들은 잎을 오므리며 또 다음의 생을 약속하지만 산수국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시간은 그렇게 예쁘게 피었던 매화, 동백 그리고 철쭉을 초라하게 지게 하더니만, 둘레길의 산수국조차도 시간의 흐름에 순종하게 만든다. 내년엔 또 다른 산수국으로 내 앞에 나타나겠지만 아쉬운 마음이야 어찌하겠는가! 오고가는 것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나보다.

내 주위의 자연들이 “하나의 시절이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

그래서 “죽음이란 것이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라고 속삭여주는 듯하다.

며칠 전 잔비가 내리는 송악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산방산 꼭대기가 구름으로 둘러싸였다. 비오는 둘레길은 언제나 이렇게 호젓한 포행이다.

>>>>>>>>>>>>

해와 달이

허공을 돌면서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간다’고 생각치 않듯이,

성품이 본래 적멸하여 분별이 없다.

– 화엄경에서 –

>>>>>>>>>>>>>

제주대머리

댓글 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