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는 중국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묘로서 임진왜란뒤인 1601년(선조34)에 세워졌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이며 조선말 관왕을 관제로 숭상하여 관제묘라고도 하였다.
관왕묘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대하여 무장을 모시는 무묘라고도 할 수 있다.조선시대 동관왕묘외에 남관왕묘,북묘,서묘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동묘만이 남아있다.
조선의 왕들 중 유독 못나디 못난 인물로 손꼽히는 왕 중 하나가 선조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게 조(祖)라는 시호를 붙이기도 부끄럽다는 논객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의 사직이 스스로 지켜진 것이 아니라 외골수로 충직한 신하들로써 지켜진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경복궁 정전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관왕묘는 일본을 경계하기 위함 일 것이다.
선조가 특히 못 난 왕으로 경원시 당하는 것은 임진난 당시의 그의 행적이 말한다. 경복궁을 버리고 몽진을 떠나 의주에 이르러서는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도망가려는 것을 신하들이 막았으며, 이순신의 공을 외면하고 파직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물려 받은 자리를 허세로 통치하면서 공을 세운 사람이 자신 보다 추앙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외면한 왕의 후손들은 결국 300여년 후 일본에 의해 점령 당하고 만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 때 졸렬한 왜인들에 의해 파손됐다가 광복 후에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