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창 시절 실내화 대신 신은 싸구려 삼선 슬리퍼에 유성펜으로 브랜드 로고를 그려 넣어본 적이 있다면, 발렌티노·지방시·오프닝 세레머니 등에서 선보이는 고가의 고무 소재 슬리퍼는 당신에게 꽤 흥미로울 수 있다.
#2. 어린 시절 처음 액세서리로 자랑했던 보석 반지와 뚜껑 시계의 모습이 기억난다면, 당신이 뉴트로를 즐길 수 있는 자격은 이미 충분하다. 뚜껑을 열면 동물과 히어로 캐릭터가 웃으며 시간을 알려주던 추억의 그 시계는 2019년 현재, 구하기 의외로 쉽다.
돌고 도는 트렌드 속 신조어가 등장했다.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에 새로움(New)을 더한 합성어인 ‘뉴트로’다. 레트로가 장년층의 향수에 기댄다면, 레트로에서 진화한 뉴트로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옛 것’의 신선함이다. 뉴트로 감성을 입은 제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젊은 세대에게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 옛날 맛에 현대적인 재해석 들어간 제품 ‘인기’
지난달 16일 한국외식업중앙회와 식품업계에 따르면 2019년 업계 트렌드를 이끌어갈 대표 키워드 중 하나로 ‘뉴트로’가 꼽혔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식품업계는 발 빠르게 ‘뉴트로 감성’에 집중했다. 길거리나 지하철 플랫폼 자판기에서 뽑아 먹던 따뜻하고 달콤한 ‘자판기 우유’ 맛을 살린 제품부터 캐릭터와 색상·글씨체까지 복고풍 포장지로 옛 향수를 이끌어내는 제품까지 원조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제품들은 이미 소비자들의 지갑을 절로 열리게 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최근 세븐일레븐과 협업해 분말형 우유인 ‘매일우유맛 오리지널 스틱’을 출시했다. 분말형 우유는 기존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해 건조시킨 후 가루 형태로 만든 탈지분유가 주원료다. 물을 부으면 다시 액체 상태의 우유가 된다.
남양유업은 홈플러스와 손잡고 지난해 12월 자판기 우유맛을 살린 ‘남양 3.4 우유맛 스틱’을 출시했다. 남양유업이 초창기에 선보였던 ‘남양 3.4 우유’의 패키지를 적용해 복고풍의 감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랑 받았던 제품들을 ‘뉴트로 리뉴얼’로 재출시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판매 당시 디자인을 적용한 롯데제과의 ‘치토스’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상반기 출시한 ‘치토스 콘스프맛’ 포장에 1990년 판매 당시 쓰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어릴 때 먹던 치토스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 색상의 포장지에 고유 캐릭터 ‘체스터’가 그려져 복고 감성을 자극했다.
삼양식품도 1972년 처음 선보인 국민 과자 ‘별뽀빠이’ 47주년을 맞아 ‘레트로 별뽀빠이’를 리뉴얼 출시했다. ‘레트로 별뽀빠이’ 역시 과거 패키지 디자인에 사용됐던 삼양식품 로고와 서체를 그대로 활용해 복고 느낌을 잘 살린 것이 특징이다. 출시 당시 ‘추억의 요요’ 등 장난감을 더한 패키지로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
◆ 아웃도어·스포츠 업계, 백팩에 뉴트로 감성을 입히다
‘뉴트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아웃도어·스포츠 브랜드 업계로도 번졌다. 투박함, 큼지막함 등 특유의 감성이 반영된 패션 잡화가 집중적으로 출시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아웃도어·스포츠 업계에서 새로 출시한 신학기 백팩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뉴트로 감성을 입었다. 이들이 내세우는 2019년 신학기 백팩은 공통적으로 큰 사이즈와 빅 로고 스타일을 지녔다.
컬럼비아는 뉴트로 스타일의 ‘스네펠스 파인스 패스™ 30’와 ‘배쉬플 브룩 로드™ 30’ 백팩 2종을 출시했다. 트렌디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갖춰 신학기 백팩으로 손색이 없다.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백팩 ‘라이크’를 출시했다. 소프트한 질감과 내추럴한 쉐입에 디스커버리 빅 로고 및 지퍼, 손잡이, 매쉬 주머니로 보색 포인트를 줬다.
빈폴스포츠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뉴비 백팩’을 선보였다. 라운드 형태의 트렌디한 실루엣과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으로, 백팩 앞쪽에 메쉬 포켓을 달아 수납 공간을 마련했다.
엄브로는 넉넉한 사이즈의 스퀘어 타입 백팩 ‘카프 백팩’을 내놓았다. 8개 포켓으로 공간을 분리했고 아우터를 걸 수 있는 버클이 있다. 가방 전면에 브랜드 빅 로고가 돋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뉴트로는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과도 연관된다. 과거에 유행했던 디자인과 패션 등이 수십 년 뒤에 다시 유행하는 상황을 보면 알기 쉽다. 편안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무채색 계열의 오버 사이즈 아메카지룩, 어글리 슈즈, 사이하이 롱부츠 등이 돌고 돌아 스키니보다 인기를 더 얻고 있는 것처럼.
◆ 2019년 한 해도 식지 않을 파워 트렌드, ‘뉴트로’
이렇듯 뉴트로는 전체 업계를 아우르는 파워 트렌드로써 2019년에도 그 인기를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일원)는 2019년 한 해를 관통할 단어로 ‘New-tro(뉴트로)’를 꼽았다.
이 교수는 “어느날 한 학생이 제게 ‘퀸(Queen)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안다’고 대답하자, 학생은 ‘퀸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영화로 처음 알게 됐고, 이후 그들의 노래에 완전히 빠져들어 매일 듣고 있다’고 말했다”며 “작년 한 해 말미 극장가를 휩쓸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일어난 ‘퀸의 열풍’이 뉴트로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듯 복고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이 복고를 경험한 후 그것을 본인들의 문화나 생활의 일부로 소구하는 것이 뉴트로”이며 “레트로가 3040세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과거의 향수를 자극시키며 소구점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7080년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1020세대가 새롭게 받아들이며 트렌드로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뉴스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