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드럭스토어에서 만난 한 여대생(25세)은 “2000원이면 살 수 있는 담요를 캐릭터 하나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1만 6000원을 주고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귀여움의 위력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마디로 요즘 10~20대 젊은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다면 이왕이면 귀여운 걸 사고 싶어한다”면서 “그래서 제품력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상당히 비싸더라도 귀여운 것 하나 때문에 소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귀여움’은 요즘 마케팅의 핵심 단어이다. 상품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소비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황금률’이다.
LG전자 디자인센터 연구소의 박지영 연구원은 한 디자인 전문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잔 고장 없는 튼튼한’ 제품에서 ‘감성을 만족시키고 스타일을 선도할 수 있는’ 제품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소비자의 눈길과 발길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디자인’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답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공산품의 품질이 전세계적으로 평균 이상을 넘어서면서 상품선택의 기준도 ‘기능’에서 ‘감성’으로 이동돼 있는 상태라는 얘기다.
‘귀여움’은 이미 ‘캐릭터 상품’의 형태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26세의 한 여성 직장인은 “평소 카카오 프렌즈의 한 캐릭터를 좋아해왔다.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적금을 들려고 했다. 그런데 카카오 뱅크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와 통장을 주는 것 때문에 그게 귀여워서 이왕이면 카카오뱅크에다가 계좌를 개설해서 적금을 들고 있다”고 전했다. 카카오프렌즈(Kakao Friends)란, 카카오가 지난 2012년 11월 출시한 카카오톡 이모티콘 기반 캐릭터들이다.
그녀의 설명처럼 카카오뱅크는 은행카드에 캐릭터를 하나 그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불과 귀여운 캐릭터 하나를 그려서 붙여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런 마케팅의 효과는 충분히 통하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가 마케팅 효과를 넘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자리잡은지는 꽤 오래됐다. 특히 ‘이모티콘을 통한 의사소통’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사회에서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됐다.
이와 관련해, ‘SNS협력학습에서 이모티콘의 유형과 정서적 특성이 학습자의 학습 만족도와 의사소통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저자:유위,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8년)에서 저자는 “언어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에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의사소통의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서 시각과 청각 등 비언어적 요소가 단순한 언어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며 “특히 SNS를 통한 소통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남다른 의사소통을 통해 감정 전달을 가능하게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온라인 환경에서는 이모티콘(emoticon)과 같은 비언어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시각적 표현이 활성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고 썼다.
‘귀여움’을 캐릭터 상품으로 활용한 사례다. (사진출처= 카카오프렌즈 홈페이지 캡처)
이뿐만 아니다. ‘귀여움의 상품화’는 화장품 쪽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다퉈서 인기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 한 캐릭터 상품들을 출시하면서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제이준코스메틱 등이 대표적이다. 이니스프리는 우디, 버즈, 알린 등 토이스토리 캐릭터 캐릭터를 제품에 부착했고, 에뛰드하우스는 디즈니 캐릭터 피글렛과 콜라보레이션 한 ‘해피 위드 피글렛 컬렉션’을 지난 1일 출시했다. 또한, 제이준코스메틱은 ‘오버액션토끼’와 합작으로 지난 7일 2종의 마스크 팩을 출시했다. 회사 측은 “귀여운 패키지 디자인과 네일 스티커와 마스크팩의 독특한 구성으로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여대생(22세)은 “나는 화장품을 좋아하는 일명 ‘코덕'(‘화장품 매니아’라는 뜻)인데, 화장품 살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브랜드가 콜라보 된 경우에는 동일한 화장품이 이미 있더라도 화장품 케이스가 귀여워서 또 사게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귀여움’은 다른 영역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한 여대생(25세)은 “나 같은 경우는 멜론(음악 스트리밍 웹사이트)에서 정기결제를 오랫동안하면 카카오톡 이모티콘 주는 행사를 하는데 그게 귀여워서 그걸 받고 싶어서 정기결제권을 해지하지 못하고 계속 쓴 적이 있다”며 웃었다.
금융권에서도 ‘귀여움의 상품화’는 어김없이 캐릭터의 형태로 구체화됐다. SNS에서 문자보다는 ‘사랑스런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뜻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그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JT금융그룹은 이미지 광고를 하면서 금융상품 설명은 생략하고 광고 전체를 아예 이모티콘 얘기로만 채우거나 ‘제이티’라는 명찰을 단 귀여운 하얀 강아지를 아무 설명없이 그냥 내보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뱅크 모임통장 오픈기념’으로 ‘모임통장 참여하면, 니니즈 이모티콘 100% 증정’이라고 쓴 제하에 기간만 기입하고는 그 오른쪽 공간에는 귀여운 니니즈 캐릭터를 그려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IBK 기업은행은 ‘모바일 이모티콘 출시’를 알리면서 광고 문구에 “귀엽고 듬직한 IBK 희망로봇 기은센과 기운찬 가족의 다양한 감정, 테마를 담은 총 24종의 모바일 이모티콘을 지금 다운 받으세요”라고 써 놨다. 그리고 그런 문구 위에 이모티콘 캐릭터를 그려놨다. KEB하나은행의 경우는 프로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를 귀여운 모습의 캐릭터로 재창조해서 이미티콘으로 제작했다.
유통 분야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은 ‘방탄소년단(BTS)과 라인프렌즈(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스티커 캐릭터)가 함께 콜라보레이션해 탄생시킨 캐릭터 ‘BT21’의 제품을 출시했다.
‘멜론’ 얘기를 했던 여대생(25세)에게 ‘귀여운 것을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그려진 캐릭터 상품을 제품의 품질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캐릭터가 붙어 있는 것을 산 적이 있는데, 그 가수 자체가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캐릭터가 더 귀여워서 그랬다”며 “그걸 갖고 나도 귀여워 보이고 싶은 심리랄까”라고 답변했다.
‘1인 자녀 시대’로 접어들면서 형제나 자매가 없는 ‘2030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외로울 때엔 위로를 받고 싶고 기쁠 때에 같이 축하하고 싶은 친구를 찾기도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애완동물이나 인기 캐릭터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질 수 밖에 없다. 펫을 입양하거나 각종 상품을 구입할 때 얼마나 귀여운지가 선택을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출처 : 뉴스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