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재발견 7, 오행(五行)과 감정(感情)

서양의학의 스승 히포크라테스는 일찍이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음식으로 자연치유 하는 것이 약물 치료보다 더 좋다고 본 것이다. 동양의학에서도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식의(食醫)라 하여 약으로 고치는 의사 약의(藥醫)보다 한 차원 높은 의사로 인정해 왔다. 동서양이나 할 거 없이 식의가 약의 보다 더 명의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서양보다 한 차원 높은 심의(心醫)를 지향한 의학체계

한편 동양의학에서는 식의 보다 한 단계 더 높이 추앙 받는 의사가 있다.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다. 서양의학 보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동양의학에서는 동양철학체계의 기본인 오행(五行)을 바탕으로 心醫이론 체계를 세워 놓고 약의나 식의나 할 거 없이 심의를 지향하여 공부하고 치료했던 것이다.

칠정(七情)은 우리 몸과 마음의 외부적인 표현으로 우리 몸의 오장(五藏)이 주관

동양의학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분노(怒), 기쁨(喜), 생각(思), 근심(憂), 공포(恐), 슬픔(悲), 놀람(驚)이 그것이다. 이 일곱 가지의 감정을 칠정(七情)이라고 부른다. 칠정은 우리 몸과 마음의 외부적인 표현이다. 곧 마음의 행로이자 몸의 상태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같이 간다. 마음의 행로가 바뀌면 몸이 변하고 몸의 상태가 바뀌면 마음의 흐름도 변한다. 칠정은 이런 몸과 마음의 협연으로 만들어진다.

칠정은 우리 몸의 오장(五藏)이 주관한다. 실제로 心醫를 지향하는 의사들은 감정을 이용해서 사람을 고치고 체질에 따라 몸에 맞는 음식을 처방하여 치료 했다. 이들이 감정을 중요시 한 것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감정이지만 거기엔 몸을 병들게 할 만큼의 에너지가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이 에너지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쓰는 것이 평상심이다. 칠정 가운데 분노(怒), 기쁨(喜), 생각(思), 근심(憂), 공포(恐)를 오행과 연결해서 설명한다.

분노()

간은 분노를 주관한다. 열 받아서 화가 치받칠 때 주로 쓰는 기운은 간의 기운이다. 간의 기운이 센 사람은 화를 내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화를 내면 악을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스타일만 구기고 만다. 반대로 간기가 약한 사람은 화를 잘 내질 못한다. 결코 착해서 화를 안내고 참는 게 아니다.

간의 소리는 ‘부르짖음’이다. 분노가 밖으로 발성되는 모습을 떠 올리면 된다. 분노는 우리 몸에 울체된 감정들을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한다. 木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단단하게 뭉친 감정의 응어리를 분노가 흩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는 것이 좋다. 화를 내지 않고 가슴에 쌓아두면 화병이 생긴다. 이럴 땐 고함을 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하다보면 간열이 생겨 간병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맛 나는 음식들이 도움이 된다.

심장 기쁨()

심장은 기쁨을 주관하다. 기쁨은 좋은 정서다. 하지만 기쁨도 지나치면 심장을 상하게 한다. 우리말에 “좋아 죽는다.”는 말에 이런 의미가 내포 된 것으로 보인다. 기쁨은 분노가 흩어 놓은 감정을 화(火)의 기운을 써서 남김없이 태운다. 그래서 많이 웃으면 몸 안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정없이 타고 만다.

기쁨은 온몸의 기운을 느슨하게 만든다. 한참 웃고 나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몸에 경직되고 뭉친 기운들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웃음 대신 근심이 잘 일어난다. 더불어 너무 과도하게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과 기쁨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심장의 병리적 문제다. 잘 웃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쓴맛 나는 음식이 도움이 된다. 쓴맛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해서 웃을 수 있게 해준다.

비장 생각()

비장은 생각을 주관한다. 생각도 하나의 감정이다. 비위가 발달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친화력도 좋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 생각이 많아서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생각은 사고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질없는 눈치와 이해타산, 인정 욕망 등의 잡생각들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에게 신경성위염이 많은 것은 쓸데 없는 생각들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걷는 것이 좋다. 사지를 많이 쓰면 비위의 기능이 좋아진다. 몸을 많이 쓰고 나면 밥맛이 좋아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또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할 때는 단맛이 나는 음식이 도움이 된다.

근심. 슬픔()

폐는 근심을 주관한다. 근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하얗다. 폐가 상했기 때문이다. 근심이 많으면 우리 몸의 기가 크게 소모된다. 기가 소모되면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다. 근심이 쌓이고 쌓여서 슬픔이 되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을 치며 운다. 상갓집에 가면 슬픔에 겨운 사람들이 곡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폐에 가득 찬 슬픔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다.

“슬픔을 빼낼 수 있는 것은 눈물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폐기가 상해서 자주 근심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운 음식들이 도움이 된다. 매운맛은 폐기를 북돋아 준다.

신장 공포()

공포와 두려움은 신장이 주관한다. 두려움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원초적인 감정이다. 유한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존재의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감정인 것이다. 사람이 공포에 질릴 때 신장의 기운을 쓰게 되는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의학적으로 우신에는 성호르몬이, 좌신 에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드레날린이 저장되어 있다. 신장이 약하면 작은 두려움에도 중심을 잃게 된다.

현대인을 지배하는 정체모를 불안의 정서는 신장기운의 저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반대로 신장의 기운이 튼실하면 인생에 대한 성찰적 능력이 커지게 된다. 공포의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는 것도 두려움과 신장·방광의 관련된 증거다. 겁에 질린 사람은 얼굴이 검어지는데 이것은 수기운의 영향이다. 겁이 많고 잘 놀라는 사람에게는 짠맛 나는 음식들이 도움이 된다. 끝으로 현대인들이 신장이 나빠지는 원인으로 귀에 꼽고 다니는 이어폰과 너무 큰소리로 듣는 음악과 도시의 소음으로 인한 청력의 상실이라고 본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귀와 연결되어있다. 귀를 보호하는 것이 신장의 기운을 보호하는 것이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이렇게 신체 곳곳에는 우리의 정서와 의식의 기호들이 숨어 있다. 몸이 우리의 감정들을 그때마다 속임 없이 표현하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감정을 살펴보면 오장의 병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고, 오장에 병이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해당되는 감정의 태과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식했으면 문제는 반 이상 해결된 것이다. 오행과 감정들을 잘 숙지하여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유하고 예방 할 수 있는 지혜가 五行안에 있다.

진리영 / ilhada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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