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五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일컫는다. 인의예지신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말하는데, 인간을 인간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오상’(五常)이라는 것이다. 상(常)의 ‘항상’이라는 의미는 오상을 ‘항상’ 닦고 기르지 않으면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인간으로서 항상 지키며 살아가는 원리, 그것이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오상’(五常)이다.
‘오상’과 ‘오행’의 관계를 알아보자.
♦ 목(木) ― 인(仁)
불쌍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仁)의 정서다. 이 따뜻한 마음을 오행 상으로 목(木)에 배속시켰다. 목의 기운으로 충만한 계절은 봄이다. 봄의 만물은 서로를 살리고 성장하도록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래서 봄에는 사형집행도 금지시켰다. 봄에 사형을 집행하면 인(仁)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이 인간의 덕목
생장하는 기운으로 가득 찬 봄에 천지가 만물을 다 품어주고 키워주는 것처럼 사람도 인(仁)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이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런 인(仁)의 마음은 서울의 동대문에 담겨있다. 동대문의 정식명칭은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인(仁)을 흥하게 하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동쪽의 목(木)기운을 북돋아서 봄의 마음인 인(仁)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흥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 화(火) ― 예(禮)
예절 예(禮)는 ‘보일 시(示)’와 ‘단술 례(豊)’가 합쳐진 글자다. 제단 위에 달콤한 술을 신에게 바치며 풍성한 수확과 행복을 비는 행위를 상형화 한 것이 ‘예절 예(禮)’라는 글자이다. 제사 지낼 때의 풍성함과 화려함 때문에 예(禮)를 화(火)에 배속했다. 여름은 화(火)의 기운이 지배하는 계절이다. 여름에 만물은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겸양지심’(謙讓之心)을 권장하는 ‘숭례문’(崇禮門)
예(禮)는 이 자신감이 넘쳐 방만으로 치달아 갈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겸양지심’(謙讓之心)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예의 마음은 서울의 남대문에 담겨있다. 남대문의 정식명칭은 ‘숭례문’(崇禮門)이라 하여 예를 숭상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화(火)는 생명의 에너지다. 하지만 이 에너지는 제어되지 않으면 파괴의 힘으로 돌아온다. 예(禮)는 그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을 막고 방종으로 치닫지 않도록 만드는 ‘제어장치’인 것이다.
♦ 토(土) ― 신(信)
토(土)는 목화금수(木火金水)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잘 운행될 수 있도록 컨트롤 하는 작용을 한다. 그건 토(土)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중심에 있으면 사방이 다 보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현상이 생기면 즉시 바로잡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화금수(木火金水)는 토(土)를 신뢰하고 마음 놓고 운행을 한다. 그래서 신(信)을 오행에서 토(土)에 배속시켰다.
오상(五常)을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
옛날 황제들이 입었던 옷이 토(土)의 색깔인 황색이었던 것도 황제와 백성들 간에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이런 토(土)의 기운은 서울의 ‘보신각’(普信閣)에 담고 있다. 보신각은 새벽4시와 저녁7시에 종을 쳐서 사대문을 열고 닫았다. 중앙에서 사대문을 관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종을 쳐 시간을 알리고 사대문을 열고 닫았던 이유는 사대문과 보신각에 담겨있는 오상(五常)을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도 있었다.
♦ 금(金) ― 의(義)
가을의 기운인 의(義)는 알곡이냐 쭉정이냐 하는 기준에 충실하게 심판을 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옳은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옳을 의(義)를 오행에서 금(金)에 배속시켰다. 여름의 화려함을 단숨에 제압하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 금(金)의 속성이다.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어도 금은 과감하게 판단하여 버릴 것은 버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火)의 기운에 의해서 천지가 폭발해 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의(義)는 옛 선비의 참모습이다.
금(金)의 단호함은 의(義)에 서려있다. 의(義)는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의미한다. 또한 의(義)는 옳은 방법이 아니면 부귀영화도 마다했던 옛 선비들의 참모습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놓는 이러한 모습이 인간의 본성인 의(義)인 것이다. 이런 금(金)의 기운을 서울의 서대문에 담았다. 서대문의 정식명칭은 ‘돈의문’(敦義門)으로 의(義)를 두텁게 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의(義)와는 거리가 먼 사건들이 벌어진 곳이 돈의문이었다. 계유정란 당시 단종을 지키려다 수양대군에게 공격을 당한 김종서가 부상을 입고 도성에 들어가 군사를 동원하려 했으나 돈의문이 열리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자객들이 돈의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돈의문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 수(水) ― 지(智)
지혜 지(智)는 ‘알 지(知)’와 ‘날 일(日)’이 합쳐진 글자다. 알지(知)는 원래 화살(矢)이 과녁 (口)을 꿰뚫듯 상황을 날카롭게 알아차리는 능력을 의미했다. 여기에 날일(日)이 더해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지혜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지(智)는 상황이나 사태를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지혜로운 마음이다. 오행에서는 수(水)에 배속하였다. 수(水)는 겨울의 기운이다. 겨울에 함부로 밖에 나오면 얼어 죽는다. 겨울의 생명들은 활동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의 지혜를 발휘한다. 겨울잠을 자기도 하고 씨앗의 형태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함부로 나섰다가 명예나 목숨을 잃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나아가야 할 때와 움츠려야 할 때를 명확히 아는 것이 곧 지(智)인 것이다.
북대문은 닫아 걸고 풍속 단속
흥미롭게도 북대문의 이름에는 지(智)가 들어있지 않다. 다른 대문들은 그 방위에 해당하는 오상(五常)을 넣었음에도 유독 북대문에 지(智)를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북대문을 만들 당시 북대문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다. 그런데 숙청문을 만들고는 거의 문을 닫아 두다시피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북방의 음기가 이 문을 통해 들어와 여자들의 풍속을 문란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음기를 누르기 위해 지(智) 대신 엄숙하고 경계한다는 의미의 ‘엄숙할 숙(肅)’과 ‘맑을 청(淸)’을 쓴 것이다. 우리가 북대문으로 알고 있는 ‘홍지문’(弘知門)은 숙종 때 북한산성을 보수하며 새로 만든 문이다.
♦ 오행(五行)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오상(五常)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수많은 경험과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때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오상(五常)을 잘 감지하여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우주의 원리인 오행(五行)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진리영 / ilhada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