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발표된 정부와 산업은행의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이 성사되면, 보유자산 40조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인수사인 대한항공이 단번에 여객과 화물운송 실적 기준으로 세계 7위권의 초대형 글로벌 항공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항공사를 통합하는 ‘빅딜’은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 회사가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거나, 3개 사업자의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각 사업자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보고 독과점으로 판단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국내선 점유율은 42.2%이지만, 자회사인 에어서울·에어부산·진에어 등 저비용 항공사(LCC)까지 합치면 62.5%까지 올라간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시장점유율을 50% 밑으로 끌어내기 위해, 자회사인 LCC들을 매각하거나 통폐합하는 등 점유율을 낮춰야만 한다. 공정거래법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게 ‘배달의민족’ M&A승인조건 통보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공정위는 DH가 이미 운영 중인 배달앱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조건을 인수조건으로 내걸었다. DH는 이미 ‘배달의민족’과 같은 배달앱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배달앱 시장에서 1위는 59.7%의 점유율을 차지한 배달의민족이다. 요기요의 점유율은 30%로 2위다. 배달통은 1.2%다. 공정위는 DH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한다면 점유율 90%의 초거대 사업자가 탄생하게 되므로 ‘요기요’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배달의민족’인수를 승인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법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는 모순이 수반되는 것이다.
DH 관계자는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기업결합 시너지를 통해 국내 사용자들의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려는 DH의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 음식점 사장, 라이더, 소비자를 포함한 지역사회 모두의 입장에서 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겠다”며 “공정위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최선을 다해 긍정적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도 공정위에 아시아나항공이 이번 합병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LCC들의 희생 없이도 기업결합을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회생이 불가한 회사’는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데 예외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4월에도 공정위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하면서 “이스타항공은 회생 불가능한 회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바 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3개월 후 끝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 실사결과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아시아나 항공이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회생이 불가한 회사’ 기준에 해당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한항공에게 DH의 공정위 설득과정이 중요한 벤치마킹사례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