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이 오랜 만에 분주해졌다.
사십구재가 이틀 건너 치러지고 입춘기도와 삼재불공 준비도 해야 하고 또 갑작스레 신도 한분이 돌아가시고… 밀양에 머물던 아내가 지인과 함께 오니 신경 쓸 일들이 겹쳐진다.
어쩔 수 없이 영가靈駕의 입관에는 나 혼자 참석해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의식을 치러야만했다.
장례식장엘 가기 위해 차량 곁으로 가니 문 옆에 죽은 노루의 사체가 가로막는다. 아마도 들개들의 장난인 것 같다. 얼어붙은 노루의 모습에 갑자기 싸늘함이 다가온다.
장례식장에 도착을 하여 염습이 시작되니 이젠 고인이 되신 분의 시신은 이승에 남겨진 분들로부터 그동안의 정을 마감하려는 듯 창백함을 넘어 파란 빛의 서늘함까지 보여준다. 남겨진 분들의 울음소리와 내가 흔들어대는 요령소리와 시신의 창백함 등이 한순간에 함께 한다.
다음 날은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둘레길 도는 일과를 접고,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해변을 드라이브했다. 애월의 한림이라는 항구를 지나는데 차 옆으로 꿈틀거리는 갈매기 한마리가 보인다. 내려서 살펴보니 먼저 지나간 차량의 앞유리에 부딪혔는지 다리와 날개가 부러진 듯해 보인다. 그냥두면 뒤에 오는 차량에 완전히 깔려버릴 것 같아서 인도 끝부분으로 옮겨 놓았다. 피가 나오는 입가를 슬쩍 닦아주는 나에게 애원하듯 바라보는 눈이 애처롭다. 돌아선 내 마음 속엔 한동안 그 눈매가 아른거려 죄지은 느낌이 잠시 머무는 것 같다.
이렇게 번잡하던 며칠이 지나 오늘부터는 입춘기도가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많이 내리는 소리에 가부좌를 풀고 책상에 앉아 눈과 귀에 빗자국들과 빗소리를 담는다.
“비가 온다.”
비가 오더라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늙은 할매들이 많이 왔으면 싶다. 이런 빗줄기는 인적 드문 산 속을 그립게 하는 아주 못된 방문객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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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너의 손에 행복을 놓아준다면,
너는 다시 다른 것을 떨어뜨려 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과 이익을 하나씩 번갈아 얻으며
가장 간절히 바라던 것을
너는 혹독하게 증오하게 되리라.
인간의 손은 아이의 손
이 손을 오직 철없이 부수기 위해 뻗친다.
온 땅을 폐허로 만들고도
이 손이 잡는 것은 결코
그것의 소유가 되지 못한다.
인간의 손은 아이의 손,
안간의 마음은 욕심 많은 아이의 마음,
뻗어서 잡아 보아라…
거기에 보잘 것 없는 잡동사니가 있을 뿐
금방 웃었던 자가
이제 슬피 울어야 한다.
운명이 너의 손에 꽃다발을 놓아준다면
너는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꽃송이를
쥐어 뜯어 버리고 말 것이다.
제손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망쳐버리고
흩어진 조각들 때문에 너는 울게 되리라.
—빌헬름 라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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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머리 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