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남한산(南漢山)과 청량산(淸凉山) 두 개의 산에 걸쳐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석성이다. 남한산이 522.1m로 최고봉이지만 남한산성의 주봉은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이다.
♦ 영조 때 ‘서장대’에서 ‘수어장대’로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목적에서 지은 누각이다.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2층으로 증축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 매바위 전설
청량당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 책임자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 송씨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1626년(인조 4년)에 완성된 성곽을 건설 할 때 이회 장군은 워낙 꼼꼼하게 성벽을 쌓다 보니 경비도 부족하고 공기도 늦어졌다. 사재까지 들여 경비로 충당하였지만 오히려 공사경비를 주색에 탕진했다는 누명을 썼다. 장군은 구차한 변명 없이 “내 죄가 없다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오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참수 당했다. 장군의 목이 잘리는 순간 매 한 마리가 나와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가 날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회 장군의 목에서 나온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르고 신성시했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자 ‘청량당’이라는 사당을 지어 부부를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고 한다.
‘매바위’는 ‘수어장대’ 앞에 남아 있지만, 전설 속의 매 발톱이 찍힌 자국은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 관리가 매 발톱 자국이 찍힌 부분을 도려내어 떼어 가 지금은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