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사막으로 보내야

♦ 조선이 망한 이유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의 패권을 잡은 17세기 중엽에 유럽은 갈릴레오와 뉴턴으로 연결되는 기초 과학 연구가 중세의 암흑을 거둬 내고 있었다. 반면 조선에서는 오랑캐 청나라를 배격하고 이미 망해 버린 명나라의 주자학 법통을 계승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예송논쟁으로 소일 했다.

변화하는 현실을 무시하는 오만과 시대를 역행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당시에 문자를 이해하는 국민은 많아야 7%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사이 90%가 넘는 나머지 국민들은 기아와 질병에 허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더 일찍 망하지 않은 이유는 주자학에 있다. 살아 남아 조상제례를 모셔야 한다는 자손으로 의무를 지키려면 , 삼족을 멸하는 중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영국병 수술로 나라를 살린 대처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폭격으로 초토화 된 런던에서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간된다. 처칠 수상이 베버리지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후 영국이 건설하게 될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엄혹한 현실에서 고통 받는 국민에게 희망의 비전을 전달하여 전쟁총화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모든 국민이 국가 책임 하에서 최저한도의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평등권을 채택하였다. 국민들을 궁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완전고용”, “무료의료 및 재활서비스”, “가족수당” 같은 포괄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그 때문에 보고서의 사회보장체제는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이 보고서의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 노동당의 애틀리 내각은 마침 전후 세계적인 경제호황 속에서 종합적 사회보장체계의 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다가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봉착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사회복지제도의 위기를 초래한다. 1979년 집권한 대처수상은 영국의 사회복지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원인이라는 진단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수술대에 올리고, 나라를 살렸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에는 운(運)이라는 요소가 개입 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퇴보를 살펴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정책은 시대변화에 따라 어떤 결과가 초래 될지 모르는 일이다.

♦ 성공의 비결은 재능이 아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앤절라 리 덕워스(Angela Lee Duckworth)는 Grit이라는 책에서 “성공의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정과 끈기의 조합에 성공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Grit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끝까지 해내기 위하여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 나가며,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더군다나 Grit은 운(運)마저 이길 수 있는 덕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Grit을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봉착한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는 “나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Grit은 교육에 있다.

♦ 드라마 스카이캐슬

연말 송년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제 중 하나가 jtbc 연재드라마 “스카이캐슬”이다. 고등학생 아이를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부모들 이야기다. 극중의 이야기를 보면, 그 부모들 스스로가 명문대학을 나와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인텔리임에도 불구하고, 입시컨설턴트까지 고용하여 아이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개성과 적성이 의미가 있을 리 없다. 모든 게 입시제도의 기준에 따라 사육되는 현실이다. 심지어 입시제도는 표준화 되어 있지도 않고, 정권이 바뀌고 신임 장관이 부임할 때 마다 수시로 바뀌고 있다.

♦ 도전정신의 실종

요즘 우리 사회에 실종된 게 도전정신이다. 특히 2030에게는 “단 한번만 삐끗해도 끝”이란 생각이 지배한다. 좋은 대학 입학과 안전한 직장취업을 위해서 부모와 학교, 학원에서 사육되어 온 2030의 속성 탓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정치권마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청년에게는 좋은 직장”,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 “나이든 사람들을 위한 노후복지”를 책임진다고 나서고 있다. 물론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복지다. 그러나 모든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경쟁국들은 바야흐로 화성과 달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다. 그와 함께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기업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기에 현실 안주는 곧 퇴보로 이어질 것임은 불문가지다.

♦ 낙타는 사막으로 보내야

부모와 학교 그리고 정부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아 온 2030에게 도전정신과 열정 그리고 Grit를 기대하는 것은 낙타를 밀림으로 보낸 것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강점을 찾아서 발휘해 본적도 없고, 안전한 환경에서 도전할 동기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야망과 열정을 가지라는 공허한 외침 보다 그들에게 삶의 자유를 허락하고, 시야를 넓혀주는 방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낙타는 사막으로 보내야 진가가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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