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보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상상력사전』을 보면, “인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 제목만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세 가지 중 마지막 한 가지만 소개 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사람들은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과학적인 발명을 하고, 철학의 체계를 세우거나 정치제도를 만들면서 그 모든 행위가 자아를 초월하는 고상한 동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주장에 다르면 인간은 그저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다.

검찰은 어려운 국민들이 의지할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미투”의 불길이 검찰에서 불거져 확산 중이다. 그런 자리에 가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화증이 나는 것은 평소 검찰을 특별하게 생각해 왔다는 기대감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엄혹한 생활전선에서 자신이 당하는 불평등과 인간적인 모독, 모함을 당하는 일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참고 사는 것은 언젠가 그들에게 의지하면, 세상의 정의와 중심을 잡아주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들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한가한 잡설을 빌어 술안주거리로 치부 할 일이 아니다. 또는 “하필 왜 지금이냐?”논리로 정치적 음모론으로 본말을 전도해서도 안 될 일이다. 적폐를 해소하여 세상 질서의 엄격함과 정의를 보여줘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때가 시급하다. 국가안보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이고 있고, 국가 대사인 평창 올림픽은 발 등의 불인 상황이라 설 명절을 앞 둔 민생은 물론 청년실업으로 웅변되는 경제위기마저 도외시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지경이다.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이럴 때 일수록 오늘의 삶에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고 풍속을 정화하는 일이 보다 근원적인 치유책이며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문제해결의 결과가 삼척동자도 알만큼 누군가의 한 풀이나 자리싸움으로 변질 되어 국민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킨다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판에 국민들의 짜증은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예견 된다.

국민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말아야

“인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남들도 그러니까 하고 그러려니 참겠지만, 뻔 한 방식으로 국민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일은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송근석 /shark@thesignal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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