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제보로 알아
질병관리청은 전날 오후 이런 내용의 신고와, 신고 내용을 뒷받침하는 사진·영상을 제보 받고 백신 공급을 즉각 중단하는 한편, 접종 등 전체 일정을 중지했다.
22일 정은경청장은 브리핑을 열어 “유통상 문제가 발견된 백신은 22일부터 국가 예방접종을 시작하려고 준비한 만 13~18살 아동 대상 정부조달 계약 물량 중 일부”라며 “차량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쟁업체의 음해성 제보라는 변명
이번 백신 조달·공급을 총괄한 업체는 올해 이 사업에 처음 뛰어든 의약품 도매업체인 신성약품이다. 신성약품이 지역 의료기관에 공급할 백신을 운송 트럭으로 옮겨 싣는 도중에, 차 문을 열어놓는 등 적정 온도보다 높은 환경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신성약품 관계자는 “위탁 배송업체 직원들이 대형 냉동차에서 배달용 차량으로 백신을 옮기는 과정에 일부 배송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을 경쟁업체가 음해성 제보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상온 노출 시간이나 분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23일까지 식약처에 개선방안을 보고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 원칙으로 대응
신성약품이 조달·공급하기로 한 물량은 1259만 도스로, 이 가운데 만 13~18살 무료접종에 쓰일 예정으로 배송되던 약 500만 도스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전체 일정을 중단시킨 것은 신성약품이 이미 공급한 약 500만 도스와 앞으로 공급할 약 759만 도스가 현장에서 섞여서 혼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정은경 청장은 “(국가조달이 아닌) 의료기관이 자체 확보한 물량은 먼저 접종을 재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제조사가 아직 공급하지 않고 갖고 있는 물량도 있어, 그 물량을 먼저 공급하고 나머지는 유통 조사와 품질검사를 한 뒤 공급 하겠다”고 밝혔다.
◆ 반복되는 행정실수로 국민만 피해를 봐
아무튼 이번에 사용이 중지된 500만 도스데 대한 품질검사 결과가 ‘폐기’로 결론이 나면, 500억원이 넘는 피해금액은 별도로 하고라도 당장 코로나19 앞에서 올해 백신접종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백신을 새로 생산하는 데 5~6개월 걸리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으로 백신에 아무 문제가 없어 사용 할 수 있다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누가 그 백신을 맞게 될지 찝찝한 기분은 여전히 남는다. 결과적으로 피해는 온전히 국민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달을 낸 관계부처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나 ‘코로나·독감’ 더블 팬데믹으로 예정된 국가가 책임지는 무료접종 사업에서 발생한 엄중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누구라 할 거 없이 만약 이번 사건에서도 “①원칙을 지키지 않는 실수 ② 폭로와 제보 ③ 뻔뻔한 책임 공방으로 빠져나가기 ④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라는 늘 봐오던 도식이 적용된다면 국민의 분노를 감당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