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이야기 17 – 스트레스 비만 치료

<사진 : 비만 치료를 위한 운동 중 하나, 복싱 >

 

『황제내경』에는 “肥貴人則膏梁之疾也(신분이 높은 뚱뚱한 사람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세종대왕이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 세종대왕의 비만

 

세종대왕은 비만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35세 때에는 살이 빠져 허리띠가 헐거워졌으며, 물을 매우 많이 마시는 소갈병과 시력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과 운동 부족으로 당뇨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 비만과 당뇨가 부(富)의 상징 ?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도 60~70년대까지는 비만과 당뇨가 부(富)의 상징이었던 적이 있다고 들었다.

 

비만이 부의 상징이라는 이야기가 아랍문화권에서는 아직 실재한다.  아랍계 기혼여성을 진료하다 보면, 한결 같이 비만이다. 문진을 해 보면 처녀 때는 날씬했는데 결혼 후에 살이 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문화적 차이가 실감난다. 아랍 사람들은 여성의 외모가 남편의 성공을 대변한다. 말라깽이 부인을 둔 남편은 아내를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아랍 남편들은 아내가 살이 쪄서 남편의 능력을 과시해 주기 바란다.  사랑 받는 아내가 되기 위한 아랍 부인들은 오늘도  잘 먹고 푹신한 살을 윤기 나고 부드럽게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 영양과다 비만보다 무서운 스트레스성 비만

 

앞에서 언급한 세종대왕이나 아랍 여성 비만은 영양 과다로 초래된 것이므로 치료법이 비교적 단순하다. 문제는 현대인의 비만이 주로 스트레스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옛날 의학서적『황제내경』에는  없는 현대인의 질병이다.

 

미국, 캐나다 사람들의 비만을 치료하다 보면, 특히 여성인 경우에 ‘슈퍼우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비만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일자리를 유지 할 수 있고, 집안에서는 전지전능한 엄마로써 자리 잡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생존경쟁에서 어느 한 순간 밀려나는 수가 있다. 직장에서 퇴출되거나 가정이 순탄하지 않은 경우다.

 

그런 일이 닥치면  대부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허한 마음을 채우는 데는 배부름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에서 온 비만은 아주 조심해서 대처해야 한다.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회복 되는 단순 비만이 아니다.  심각한 스트레스성 중증비만이기 때문이다.

 

♦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비만 위험 신호

 

필자는  대부분의 스트레스성 중증비만을  ‘현실도피성회귀본능’에서 온 것으로 본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다. 이를 ‘회귀본능(homing instinct)’ 이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생존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현실도피성회귀본능’이 작용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강보에 싸인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면서 가족들의 조건 없는 사랑을 독차지 한다. 스스로 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보호자들이 해 준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로부터 무조건적인 도움을 원하게 되고, 그런 심리가 유아기로의 ‘현실도피성회귀본능’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 중증비만 환자, ‘현실도피성회귀본능’

 

필자는 이런 가설 아래 중증비만 환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치료해 왔다. 그 결과 그들에게 기질상 포악한 면이 거의 없으며, 착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진을 해 보면 특히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많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가족을 포함하여 친구 관계에도 유난히 배려심이 많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관심 표명이 그 반대급부로써 상대방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기대심리로 보인다.  그런 노력들이 좋은 결과를 얻으면 다행이지만, 허사로 그치면 자기 혼자 삶으로 숨어 버리고 사회는 물론 가족들로부터도 스스로 고립 하고 마는 것이다. 또래 아이들과 같이 뛰어 놀다가 구석 진 곳으로 숨어버린 삐진 어린아이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 무엇이 환자를 현실 도피로 내몰고 있는가 ?

 

환자치료를 하면서 얻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중증비만치료는 “무엇이 환자를 현실도피로 내몰고 있는가?”라는 원인 파악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사와 환자의 격의 없는 편안하고 솔직한 대화가 치료의 시작이다.

 

운동치료, 식이치료 등은 부수적인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근본 원인은 정신적 스트레스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는 1시간에 한 사람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야만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아 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 치료와 병행하여 가족들에게는 환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의사의 치료보다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설득하여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 비만인 의사가 비만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웃음거리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솔직히 어려움이 많다. 다양한 환자와의 대화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환자들의 직업과 나이, 인종에 따른 이해는 물론 때로는 시대를 뛰어 넘는 ‘문사철(文史哲)’과 예술, 예능에 대한 지식도 요구된다. 그러다 보면 다음 날 예약 환자를 위한  준비로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는 일도 종종 있다.

 

충분한 독서와 견문이 있어야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다양한 인종이 사는 캐나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문제가 필자에게는 엄청 큰 스트레스다. 필자도 스트레스 벽에 닥치면, 적절한 체중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그렇다고 비만인 의사가 비만증 환자를 치료한다고 나서는 웃음거리는 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가능한 덜 먹고, 운동하며 많은 책을 보려고 노력한다. 뇌를 쓰는 것도 칼로리 소모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경고하고 싶은 말은 비만증인 사람에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TV가 쥐약이라는 점이다.

 

한의학전문기자 한의사 송희정 cozyblus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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